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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라시아 견문 / 이병한
    감상문/독서감상문 2019. 6. 15. 16:05

    어릴 적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세계지도가 우리의 것과 외국의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의 세계지도는 대서양을 반으로 가른다. 자연스레 우리나라가 지도의 중심이 된다. 하지만 외국의 것은 태평양을 반으로 가른다. 대서양이 중앙으로 오면서 지도의 무게중심은 아메리카와 유럽에 쏠리는 만큼이나 우리는 변방의 작은 나라로 밀려나게 된다. 그때서야 어째서 우리를 극동지방이라 부르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러시아의 함대를 극동함대라고 부르면서, 이 지역을 연구하는 연구소를 극동지방연구소라고 칭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지도를 보면서 지리를 파악할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다.

     

    우리의 것이 아닌 외국의 세계지도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변방으로 밀려버린 지도를 보면서 시선은 항상 북서쪽에 있었다. 유럽과 미국을 들여다보면서 여러 나라와 여러 도시의 이름을 알아보고, 익히 들어온 지역이 어디인지 알게 되는 재미를 즐겼다. 그러는 동안 나의 시선은 항상 유럽과 미국에 있었다. 그들의 이름이 익숙하고 나에게 더 가깝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럽이나 미국보다 가까운 유라시아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중국,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떠올려본다. 항공권 광고에서 본 휴양지 이름 외엔 기억이 안 난다. 찬찬히 생각해 봐도 아는 것은 거의 없고, 그나마 떠오르는 것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점철되어 있다. 가까이 있었지만 참으로 무관심했다. 나에게는 그저 물가 저렴한 관광지 정도였다.

     

    아마 이 책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도록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주류 매체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제목에 알 수 있듯이 저자가 직접 두 발로 누비고 다니는 지역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견문의 무게중심은 유라시아 여러 나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말한다. 정치와 경제를 중심으로 사회의 흐름을 말하기 때문에 읽는 이의 취향에 따라서는 재미없을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바다 건너 먹거리와 눈요기로만 가득 찬 블로그보다 더 흥미진진했다.

     

    /우의 대립이 아니라 고/금의 만남을 계속 강조하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이 우리에게 심어준 냉전의 프리즘이 얼마나 지독하게 뿌리내렸는지 실감된다. 얄팍한 지식이나마 기존에 머리에 들어 있던 것들은 냉전시대의 문법이었고 이제는 그것을 버리고 새로운 창으로 이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중에서 특히 아세안, 싱가포르, 중국에 대한 점이 새롭다. 다 합쳐서 10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아세안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청렴과 유능한 정부로 부유한 도시국가를 만들었지만 독재자로 기억되던 싱가포르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정부를 운영하는지. 중화사상에 찌들어 땅과 머리수만 믿는다고 여긴 중국의 브레인들은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지 하나씩 알다보면 하나 하나가 신선했다.

     

    일부 대목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들도 나온다. 그러나 나의 이웃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된다는 점만으로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앞으로 남은 2, 3, 4권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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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Lee Gyus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