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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면 무척 반갑게 인사를 하는 싱카(Sinka). 이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여기 사람들에 대해 받은 인상을 써보려고 한다.
싱카가 하는 일은 주택 관리(?)인 것 같다. 암튼 집주인을 대신해서 임차인을 상대한다. 우리는 그들의 사무실에 가서 월세를 내고, 그들은 집에 대한 관리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관리’가 자주 문제를 일으켰다.
나보다 먼저 이사 온 옆집을 보자. 기자(Gyesar)라는 보일러가 고장 난 상태였고, 물은 끊긴 상태였다. 집 안의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져있고, 집 천장은 거미들의 놀이터였다. 부족한 게 많은 집이었지만, 이마저도 겨우겨우 찾은 상황이라 아쉬운 대로 싱카에게 구두로 보수작업을 약속받고 집에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
당장 급한 건 기자(Gyesar, 보일러)와 단수였다. 단수를 해결하는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며칠에 걸쳐서 어렵게, 그 마저도 직접 발로 뛰어서 해결했다. 그런데 압권은 기자였다. 내 기억으로 이사 온 지 거의 1달이 다되어서 싱카가 중고 기자를 하나 들고 왔다. 기자를 가져온게 주말이라, 월요일이 되면 당장에 기자를 설치 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도 오지를 않았다. 그렇게 2주정도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직접 기술자를 불렀다. 직접 부른 기술자를 통해서 중고기자를 설치하고, 나중에 월세에서 감면을 받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 집 전기에 이상이 생겼다. 다른 차단기는 이상이 없는데 전기 콘센트와 연결된 차단기가 계속 내려갔다. 다행이 전기 스토브를 설치하면서, 전기 콘센트를 따로 하나 확장을 해놓은 상태였다. 이 콘센트 1개에 의지해서 일상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싱카에게 연락을 했다. 원활히 해결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옆집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1시간이면 될 일이 2주가 지나서 전기 문제가 해결되었다.
단수와 보일러 같이 일상생활에 큰 장애는 결국 직접 해결했다. 그나마 우리 집 전기 문제는 콘센트 1개가 살아있어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경우다. 작은 일 하나 처리하는 것도 너무 오래 걸린다. 그 사이에 잠자코 기다리기만 한 것도 아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해서 연락을 했다. 그러면 전화를 안 받고, 피하고, 어쩌다 연결이 되어서 그저 ‘알겠다.’, ‘곧 해주겠다.’는 말의 반복이다. 백번 양보를 하고 다시 생각해봐도 나의 성격이 급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처럼 시간 약속을 받고, 정확하게 약속을 지키고, 하루나 이틀 안에 해결되기를 바란 것도 아니다. 오래 걸릴 것이란 생각을 하고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으나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남는다.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어떤 가치관의 차이, 생각의 차이가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지 생각해봤다.
그 뒤에 찾은 답은 ‘신뢰’의 문제였다. 다시 말해서 내가 생각하는 방법대로 일처리가 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지 고민해보니 ‘신뢰’가 보였다. 싱카에게 느꼈던 불편함의 본질은 일처리가 느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본인이 약속한 기일을 매번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불편이었다. 약속했던 시간과 날짜는 지키지 않고, 번번히 그저 자신들이 편한 시간에 등장한다. 사전 연락도 없이. 만약 내가 집에 없었다면 어쨌을 것인가? 결국 싱카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그것이 불편함을 느끼게 한 것이다.
신뢰할 수 없는 서비스를 누가 원할까? 그런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소비자는 ‘을’이다. 소수의 공급자가 ‘갑’이 된다. 만일 우리에게 살 집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공급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 집을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집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선택지가 있었다면 애초에 싱카같은 사람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익숙한 수요와 공급이 무너진 이곳에서는 공급자가 ‘갑’이 되었다. ‘갑질의 횡포’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공급을 독점한 그 들이 ‘갑’이 되어서 그들의 기준과 편리에 따라서 일을 한다. 그러니 소비자였던 나에게는 아주 불편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신뢰’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궂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으니까. 어차피 소비자들이 갈 데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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