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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 카드게임보츠와나 2019. 6. 23. 18:43
학교의 컴퓨터 수업에서 무선인터넷 접속하는 방법을 알려준 적이 없다. 느려터진 무선인터넷으로는 태블릿 1대 접속하는 것도 어려워서 아예 수업을 계획할 때 인터넷 없이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게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컴퓨터실 들어가면서부터 으름장을 놨다. 게임과 불필요한 인터넷 접속은 금지한다. 수업에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려준 다음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자유롭게 인터넷을 하게 했다. 40분 중에서 10분정도는 여유를 둬서 수업 막바지에 자유시간을 잠시나마 줬었다. 하지만 보츠와나에서는 그런 으름장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수업 시작 전 물어보면 컴퓨터를 처음 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클릭과 더블클릭을 구분해서 알려주는데도 1시간을 걸렸기에 그런 우려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나조차도 태블릿에 게임이 있는지 몰랐다.
1달 정도 지나가자 손놀림이 수상한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분명히 타자연습을 하는 시간인데 키보드 위에 있어야 할 손이 터치패드에서 머물고 있었다. 처음에는 컴퓨터 조작에 어려움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고 도와줬다. 그러나 비슷한 광경이 두세 번 반복되자 느낌이 왔다. 무언가 다른 걸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적발된 아이들의 태블릿 화면은 인터넷 검색창과 카드게임 둘 중 하나였다. 시간으로 따져보면 클릭과 더블클릭을 알게 된 지 한 두시간만에 카드게임을 찾아내서 몰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와이파이를 켜서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다른 게임을 찾기 위해 대담한 시도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해야 하는지 컴퓨터를 접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게임을 찾아내서 하고 있고, 인터넷에 연결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교수학습에서 학습자의 내적 동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비슷한 난이도의 무언가를 수업 주제로 삼았다면 엄청 고생했을 것이다. 내가 물을 퍼서 날라줄 수는 있어도 결국 그걸 마시는 건 아이들 본인이다.
한편으로 이런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같은 하늘아래에 살아가면서 단지 다른 장소에서 살아간다는 이유로 인터넷같은 보편적인 문명을 누리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또래의 한국 아이들은 유튜브에 열광하고, 메신저로 친구들과 연락하고, 옹기종기 모여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을텐데. 물론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혜택이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제는 너무나 거대해진 그 가상의 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이 아이들을 보자면, 물리적인 세계뿐만 아니라 이 또한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 아이들도 성인이 되면 스마트폰을 하나씩 사서 왓츠앱으로 연락도 하고, 페이스북을 즐기면서 가상의 세계와 연결 되겠지만, 그 세상의 중심으로 들어가기엔 조금 늦은 시작같아 보여서 이 또한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