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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각의 늪
    보츠와나 2019. 5. 26. 23:48

    보츠와나에 와서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현지 학교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현지 학교에 대한 인상은 운동장에는 축구골대 하나라도 있는게 감지덕지인 상황이고, 교실은 벽에 칠판 하나만 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중, 고등학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별실은 이름만 특별실이고 그저 책상과 의자만 있었고, 아이들은 교과서도 없이 자신의 노트에 칠판 판서를 쓰면서 자신만의 책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에 이어서 연장근무를 하시는 선생님들은 이 정도면 좋은 학교라고 한다. 사실 이런 학교들을 보면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내 머릿속에 담겨 있던 이미지는 울지마 톤즈에 나오던 그런 환경이었다.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니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처음 아프리카 보츠와나로 파견지가 정해지고 많은 생각을 했다. 그 당시 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남아공같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울지마 톤즈원시부족’, ‘동물이 전부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그러하니 교육환경에 대한 기대도 저 바닥에 두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교육부 관계자들이 직접 진행하는 행사에서 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학교들 중 외국인 교사들이 방문하는 학교를 그냥 골랐을 리 없다. 아마 고르고 골라서 공립 중에서 좋은 시설인 학교로 데려갔을 것이다.

     

    처음 와서 본 학교가 이랬으니 내가 기대하는 아이들의 수준은 저 바닥에 있었고, 자연스럽게 부족한 능력이나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의 끄트머리에는 나의 이런 봉사에 대해 고마워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접하는 그런 광경을 기대했다. 한국에서는 무언가 시도해도 아이들 반응이 예상보다 싱거운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막연한 기대감은 생각보다 빠르게 무너져갔다. 그나마 수학 수업은 괜찮았다. 컴퓨터 수업에서 타자 연습이 필요해서 몇 시간 반복해서 하다 보니 지루해하는 학생들이 빠르게 나타났다. 그들은 할 일이 있다는 둥, 피곤하다는 둥 핑계에 핑계를 대면서 수업에서 일찍 나가기를 원했다. 그리고 어떻게 찾았는지 모를 카드게임을 몰래하고 있고, 와이파이도 켤 줄 알아서 몰래 인터넷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들은 내가 줄 수 있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쉽게 접할 수 없는 컴퓨터를 가지고 놀고 싶었을 뿐이다.

     

    이쯤 되자 내가 착각의 늪에 빠져서 허황된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줄 수 있는 지식과 능력에 이들이 환호할 것이라 내심 기대한 것이다. 마치 젓가락에 들려있는 고기 한 점을 바라보는 강아지의 눈처럼, 내가 하는 수업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면 재미있어하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그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 상투적인 청소년 성장 드라마나 영화의 그런 장면들처럼.

     

    아마 그런 기대 이면에는 이 아이들이 미숙한 존재이고 채우고, 배워야 할 존재라는 가정이 있었을 것이다. 텅 빈 그릇에 물을 채우듯이,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을 이들의 머리에 가득가득 채워서 교사로서 누릴 수 있는 존경심과 자부심을 바랬던 것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존재이다. 교육을 통해서 채워야 할 빈 그릇이 아니다. 씨앗에서 싹이 터서 자라나서 커다란 나무가 되듯이, 이들도 스스로 성장해나가는 존재인 것이다. 교사의 역할은 충분한 햇빛을 쐴 수 있게 하고, 물과 거름을 주면서 성장을 응원하는 것이다.

     

    최근의 반성은 이런 생각을 다시 한 번 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현지의 교육 방식이 주입식이라고해서 수학 수업에서 그런 방향에 맞춰 수업을 하다보니 잠시 잊혀졌나보다. 물론 그렇다고 컴퓨터를 가지고 자유롭게 놀게 한 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할당량에 맞춰서 채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내려놔야겠다.

     

    컴퓨터 좀 다룰 줄 알게 된다고 해서, 타자를 양손으로 제대로 칠 줄 안다고 해서, 엑셀을 다룰 줄 안다고 해서 이 아이들이 삶이 얼마나 많이 바뀔 수 있을까? 내가 1년의 시간동안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리고 이들이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는 지점은 아마 다른 것에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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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Lee Gyus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