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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보츠와나 2019. 11. 25. 22:44
    이 글은 국립국제교육원에서 실시한 해외파견교사 대상 우수사례공모전에 작성한 수기이다.

    1년간 보츠와나의 학교에서 했던 일들을 정리해보았다. 

     

    길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보츠와나 카중굴라 초등학교

    Botswana Kazungula Primary School

     

     

     

     

    태양이 머리 꼭대기 위에 있는 보츠와나의 여름 한 가운데 이 땅을 밟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더운 날씨에 40명의 학생들이 내뿜는 열기와 햇빛에 달궈진 건물의 복사열로 가득한 교실에서 아이들과 처음 만나 인사를 하던 그 순간을 아직 기억한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자신들을 가르치겠다고 온 외국인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눈으로 가득했다.

     

    [산 넘어 산]

     

    상견례를 마치고 시작된 2주 정도의 수업참관 동안 어떤 수업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한국과 다른 시간표, 교육과정, 수업 환경들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점점 막막해져가고 있었다. 보츠와나에서는 아이들이 제 교과서를 가지지 못한 채 선생님이 써주는 칠판 필기에만 의존해서 수업이 진행된다. 간혹 억지를 부려 창고에 있는 교과서를 꺼내서 수업을 해봐도 결국 교과서의 내용을 노트에 필기해야 한단다. 현지 관리인 교사와 몇 번 이야기를 했지만,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르라는 식이었다. 이렇다보니 블록타임제로 운영되면서 1번 수업에 60분을 사용하는데, 그 중에서 반절에 가까운 시간은 노트필기에 할애된다. 하나의 수업 목표에 60분을 활용하는 점만 생각하면서 수업을 구상하고 진행하다보면 아이들 필기 시간을 고려하지 못해서 어느새 수업은 80분을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러다 판서 시간을 줄이고자 교과서를 꺼내서 수업하는 날은 오히려 노트필기의 양이 많아진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모든 내용을 옮겨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교과서 없이 수업을 하는게 시간 관리에서도 효율적이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거기에다 아이들은 필기에 얼마나 열심인지 한 글자 한 글자가 명필이다. 글씨만 보고 공부 좀 하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선입견을 깨준 아이들도 많았다.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해서 수년째 계속 된 필기는 수많은 명필을 만들어 냈다. 다만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쓰는 더딘 손놀림에 내 속만 타들어간 적도 많았다. 거기에 더해 쉬는 시간 없이 3~4시간을 연달아서 수업을 하는 방식 때문에 아이들 집중력은 한없이 늘어지고 흥미를 잃어버린 눈동자들만 교실을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의 학력 수준도 고민거리였다. 7학년인 아이들이 네 자리 수 덧셈, 뺄셈에서 손가락 접어가면서 더듬거리는게 반절에 가까웠다. 곱셈에서는 구구단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손에 꼽았고, 많은 수의 아이들이 바둑돌 같은 동그라미를 그려가면서 곱셈을 하고 있었다. 9×9라도 하는 날에는 하루 종일 동그라미만 그리고 있을 기세였다. 곱셈이 이 정도이니 나눗셈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어느 날 수업을 참관하고 있는데 연습 문제를 풀면서 계속 노트를 뒤적거리는 아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모습인데 그렇게 뒤적거리는 아이들이 많아서 무엇을 하는건지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가까이가서 보니 노트 제일 뒷장에 구구단을 19단까지 써놓은걸 보면서 문제를 하나씩 풀고 있었다. 알고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학노트 뒷장에 구구단을 적어 놓았다. 그렇게 하나씩 구구단을 찾아가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시험 볼 때는 곱셈표를 못 보는데 어떻게 할거니?

     

    그러자 아이는 씩 웃기만 했다. 실제 시험에서는 곱셈표를 보지 못하기에 구구단을 외워서 하거나, 일일이 그림을 그려가면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했다. 그러다보니 어렵지 않은 시험인데도 시간이 부족해서 문제를 다 풀지 못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노트필기 때문에 수업 시간이 부족하고, 기초학력이 부족하고, 쉬는 시간이 없는 일정 때문에 집중력이 부족하고. 처음 2주간 참관하면서 겪어본 교실은 많은 점이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성적이 모든 것이어서, 시험 점수를 잘 올리는 교사를 최고로 치는 환경에서 나의 역할은 성적향상이었다. 수업의 다양성을 만들어 나가고, 아이들과 소통하는 그런 수업은 뒤로 미뤄야 했다.

     

    [구구단을 외자~ 구구단을 외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눈에 보이는 문제는 많은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했다. 제일 처음 시작한 것은 구구단 외우기였다. 당장 시작하는 수업 단원이 사칙연산이기도 했지만, 다른 단원들에서도 복잡한 계산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기본적인 연산 능력을 다져놓을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는 말로만 구구단을 외우라고 했다. 수업 시간의 일부를 할애해서 구구단을 외웠는지 확인해갔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싱거웠다. 조금씩이나마 외우는 아이들은 40명 중에서 한 둘이었다. 다른 반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지 담임교사에게 이야기를 해도 한숨 쉬면서 아이들은 탓만 할 뿐, 별다른 진전이 없이 몇 주가 지나갔다. 작전을 바꿔서 당근을 던져주기로 마음먹었다. 교수학습지원비로 준비해온 볼펜을 선물로 주면서 의욕을 북돋아주었다. 헌데 볼펜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결국 먹을 걸로 바꿨더니 기대했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역시 먹을게 최고다. 얼마가 되었든 그 전에 비해 조금씩이나마 전진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과자와 사탕을 주었다. 나름 영리한 아이들은 거의 다 외운 눈치인데도 조금씩 나눠서 확인을 받아나갔다. 제가 받으려는 양을 늘리려고 지난 번에 외운 것을 다시 하려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쯤 되자 아무 때고 나타나서 구구단을 외우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성가실 지경이었다. 학교 도서관에 앉아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이 찾아왔다.

     

    -지금 수업시간 아니니?

     

    -선생님이 안계세요. 그래서 구구단 외우고 사탕 받으러 왔어요.

     

    무엇 때문에 바쁜지 모르겠지만 선생님들은 교실을 자주 비웠고 그럴때면 아이들은 과자나 사탕을 얻기 위해 도서관을 찾아왔다.

    그렇게 1학기 동안 하고보니 반절에 가까운 아이들이 어느 정도 구구단을 외워나갔다. 그 결과로 당연하게도 아이들 성적은 올라있었다. 1학기 수업 내용의 대부분이 사칙연산과 관련되어 있기도 했고, 나눗셈, 최소공배수, 최대공약수를 배우는 부분에서 알려준 몇 가지 요령들이 꽤나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특히 최소공배수와 최대공약수를 배우면서 알려줬던 요령은 오히려 현지 선생님이 더 신기해하면서 적극적으로 배웠다.

    그렇게 구구단 암기는 소기의 성과를 거둬가고 있었다. 비록 학년 말이 되어 졸업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에서는 그때 외워둔 구구단을 다 잊어먹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 전에 비해 나아진 건 분명했다. 1/3정도의 아이들은 느리더라도 구구단을 외웠고, 몇 번 틀리면서 손짓 발짓까지 필요한 아이들까지 합치면 절반에 가까웠다.

     

    [노트정리 시간을 줄여라]

     

    수업을 준비하면서 구구단보다 더 신경을 쓴 부분이 있었다. 판서 계획이었다. 제 교과서가 없는 마당에 칠판 필기 없이 수업을 할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답답할 만큼 정성들여 쓰다 보니 자연히 느려지는 필기속도도 감안해야했다. 단원의 제목에서부터 수업 주제, 연습문제까지 모두 공책에 필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필기 시간을 줄이려면 판서 내용을 효율적으로 계획해야했다. 사실상 판서 계획을 짜는게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교과서를 사용해서 필기를 하지 않으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도 교과서를 가져가지 못하고, 연습문제조차 교과서에 풀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과서를 사용하는 건 오히려 노트필기의 양만 늘려줄 뿐이었다. 단원 내용을 요약한 유인물을 나눠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유인물의 내용을 노트에 옮겨적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시켜서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필기 시간을 줄여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수업에 아이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게 먼저였고, 다음은 언어의 문제였다.

    현지 수업을 지켜보니 아이들은 앵무새처럼 대답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이해했냐고 물어보면 모든 아이들은 호쾌할 정도로 시원시원하게 알았다는 대답을 한다. 하지만 각자 연습 문제를 풀고 있는 사이에 돌아다니면서 지켜보면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대답과 다르게 기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걸 증명하듯 간단한 문제에서도 막히거나 엉뚱하게 풀어나가는 경우들이 많이 보였다. 그렇다고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선생님이 앞에서 설명할 때야 지켜보는 입장이기에 이해가 되는 듯 보여도 막상 자신의 손으로 풀어나가다 보면 막히는 지점이 생길 법 한데도 질문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계속 돌아다니면서 한 명 한 명 살펴보면서 물어봐야했다. 한국에서 수업을 방해할 정도로 엉뚱한 질문을 하던 아이가 그리워질 정도였다. 상황이 이러니 단순히 자세한 설명하기 위한 시간뿐만 아니라 아이들 이해도에 따라서 질의응답을 해야 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내가 지켜본 현지 수업에서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의사소통이 많지 않았다. 현지 선생님들마다 개인차는 있었지만, 대부분이 전체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문답형식이나 토론형식은 어려워도 최소한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스스로 질문을 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도 판서시간을 줄여야 했다.

    일반적인 수업에서 예제를 2~3개 준비해 가면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는 건 1~2개였다. 남은 예제는 풀이 과정마다 일일이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전체를 대상으로 물어보았더니 모든 아이들이 대답을 잘 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에게 묻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개별적으로 질문을 해보니 금세 밑천이 드러났다. 이런식으로 처음에는 내가 먼저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수업 참여를 늘려보고자 시도를 했다. 초반에는 이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서 아이들의 질문은 고사하고 내가 하는 질문에 대답을 듣기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자신의 대답이 틀려서 망신을 당할까 걱정하거나,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틀려도 괜찮으니 그저 아는 대로 대답을 해달라고 이야기를 해도 쉽지 않았다. 간혹 엉뚱한 대답을 하면 나머지 아이들이 웃거나 야유를 하는 것도 바꿔보려고 짧은 영어로 설명하느라 말이 자주 꼬였다. 그래도 이런 시간들이 하나씩 쌓이다보니 손을 드는 아이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나중에는 나의 잘못된 영어 설명을 지적해 줄 정도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아이도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아이들이 스스로 하는 질문의 대부분이 자신이 푼 문제가 맞는지 확인하는 질문이 대부분인 점은 아쉽기만 했다.

    그리고 판서 시간을 줄여야 되는 다른 이유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설명을 하다 보니 전달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업에서 활용할 발문을 준비하고 평소 지켜본 현지 교사의 수업에서 자주 쓰는 표현을 메모해서 활용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생겼다. 7학년임에도 영어에 서투른 아이들도 더러 있는 가운데 나 역시 어색한 영어로 말하다보니 아이들의 반응부터 현지 교사의 수업과 달랐다. 설사 발문을 준비해 왔어도 아이들에게 어색한 표현인 경우도 있었고, 때때로 간단한 설명조차 너무 어렵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예상과 다르게 아이들이 너무 이해하지 못해서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야하는 상황이 생기기라도 하면 안 그래도 부족한 영어로 말을 만드느라 진땀이 났다. 그래도 이 부분은 몇 주 지나지 않아서 아이들과 내가 서로의 영어 표현과 발음에 대한 감을 잡으면서 많이 좋아졌다. 거기에 더해 현지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다보니 조금씩이나마 나의 영어 실력도 늘어서 수업에서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렇게 노트필기 시간을 줄여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이 뾰족하지 않았다. 유인물을 나눠주는 등 필기를 대체하는 시도는 몇 가지 사용해 봤지만 결국 칠판 판서의 양을 줄이는게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무턱대고 줄일 수 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에게 분명히 전달해야하는 학습내용은 엄연히 정해져 있는 처지에 별 고민 없이 판서 내용만 줄이다가 정작 배워야 할 중요한 내용을 빠트린 적도 있었다. 방법은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펴놓고 핵심 교수요목을 추려서 정리하고, 곁가지 설명이나 이미 아이들이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은 수업 중에 말로 전달해야했다.

    수업에 활용할 예제와 연습문제, 가끔 내주는 숙제에 쓸 문제들도 직접 만들어야했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문제는 양은 많았지만 질이 떨어지는 문제들만 수두룩했다. 해당 수업 목표와 관련 없이 그저 숫자만 복잡한 계산들이 많았다. 사칙연산에서 실수를 한 것인지 중요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틀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숫자만 복잡한 문제들로 아이들의 학습 목표 도달 여부를 알 수 가 없었다. 간결하게 자연수로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인데 분수나 소수로 나오는 것들이 많았다. 약분과 통분이 복잡해서 개념을 이해하고 있어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문제들도 많았다. 내가 직접 풀어보면서도 이게 맞았는지 틀렸는지 헷갈려서 다시 풀어본 문제들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개념을 이해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문제와 한 두 가지 요소만 섞은 심화문제가 필요했다. 결국 내 손으로 직접 문제를 하나 하나 만들어 나갔다.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게끔 간결하게 풀려나가는 문제를 만들고, 의미 없이 소수나 분수로 계산되는 과정을 피해나가는 문제들을 만드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나중에는 이렇게 문제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장제 문제를 만들기라도 하는 날은 아이들 일상에서 만나는 주제들을 찾느라 고민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간결하게 풀려나가는 문제들을 만드느라 너무 쉽게만 만들기도 해서 이전에 배웠던 내용들을 조금씩 섞은 심화 문제도 만들어야했다.

    이렇게 판서 계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분명히 이전 학년 교육과정에 있었던 내용이기 때문에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판서 계획에서 빼고 수업 중에 간단히 짚어보는 정도로 계획했었지만 막상 수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그럴 때면 요령껏 설명을 하면서 추가로 판서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지 교사들과 수업 시간을 나눠서 진행하다 보니 그들의 진도에 맞춰서 수업을 해야 했다. 한 번씩 널뛰기처럼 오락가락하는 현지 교사들의 수업 진도 때문에 준비한 수업이 아닌 다른 수업을 한 적도 많았다. 어쩔 수 없이 4~5차시 분량의 수업을 미리 준비해야 했다.

    품도 많이 들고 귀찮기도 했지만 이런 식으로 판서할 내용을 줄여서 준비하다 보니 아이들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다른 수업에 비해서 쓸 내용이 줄어든 것은 느꼈는지 쓸거리가 적어서 좋아하는 아이들도 자주 봤다. 그도 그럴 것이 매 수업 시간마다 칠판을 꽉 채우는 내용을 공책에 옮겨 적는게 아이들한테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들이 간결해진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심화문제로 나오는게 어렵다고 불만인 아이들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준비한 만큼 아이들이 반응을 보이다보니 뿌듯했다. 이런 보람이나마 없었다면 중간에 흐지부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컴퓨터는 반복이었다.]

     

    수학수업과 함께 컴퓨터 수업도 했다. 학교에 도착한 첫 날 교장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학교에 있는 태블릿PC 50대가 있으니 그걸 활용해서 ICT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미 ICT 강사를 활용한 수업도 진행하고 있었지만, 수업 내용을 퀴즈로 만들어 TV에 보여주고 같이 풀어보는 정도였다. 학교에서 원하는 ICT수업은 아니었다.

    그렇게 ICT수업을 하기로 한 다음 태블릿PC를 살펴보니 교육용으로 사용할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다. 비록 정품이 아니더라도 MS-Office가 설치되어 있는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학교에 무선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다고 했지만, 신호는 잡힐 뿐 전혀 연결되지 않는 상태였다. 결국 순전히 오프라인으로 할 수 있는 수업만 해야했고, 필요한 프로그램을 찾아서 일일이 설치해야 했다.

     

    ICT수업을 시작하면서 태블릿PC 부팅과 종료 방법부터 마우스 없이 터치패드 활용하는 방법, 파일 만들고 지우기 등 자잘한 것들을 알려주다보니 어느새 2달 가까이 지나 있었다. 아이들은 ICT수업을 열심히 따라왔지만, 진도는 더뎠다. 수업 시간이 일주일에 1번뿐이기도 했지만, 평소에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으니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도 잊어버려서 다시 반복해서 알려주는 과정의 되풀이였다. 거기에 더해 시범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도 컴퓨터 조작이 서툴러 잘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개별적으로 다시 알려줘야 했다. 수업시간 60분이 모자라게 느껴졌다.

    그렇게 기본 조작 방법을 익혔을 즈음 다음 단계로 타자 연습을 선택했다. 독수리타법이나마 익혀놔야지 나중에 써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료 타자연습 프로그램을 찾아서 태블릿PC에 일일이 설치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키보드위에 편안하게 손을 올려놓는 것에서 시작해 대문자를 입력하는 방법까지 반복의 반복이었다.

    헌데 이 녀석들이 타자 연습 몇 번 하면서 지루해졌는지 몰래 카드게임을 찾아서 하고 있었다. 게임이 설치되어 있을거라 생각조차 못했지만, 이제 겨우 컴퓨터 조작하는 방법을 익힌 아이들이 어떻게 카드게임을 찾았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서 마시고 있었다.

    타자연습으로 2달이 흘러갔고 그 다음 수업 주제를 찾아야했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 단계에서 워드프로세서를 배우기 때문에 MS-Word를 가르칠 생각이었다. ‘ᄒᆞᆫ글’과 다른 MS-Word를 알려주려고 홀로 공부하고 있는데 교장이 스프레드시트를 수업해 달라고 말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지금 단계에서 스프레드시트는 어려워서 워드프로세서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소용은 없었다. 그렇게 스프레드시트는 다음 수업주제가 되었다.

    다시 반복의 시작이었다. Excel아이콘을 찾는 방법에서부터 시작했다. 기본함수 몇 가지를 알려주고 예제를 반복하니 몇 달이 흘러서 3학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Excel은 어려웠지만 다행이 아이들은 재미있어했다. 자신이 직접 조작해서 자동으로 계산이 되는 것을 보는게 신기하다고 했다. 지난주에 알려준 걸 잊어버려서 다시 알려주길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함수를 사용해서 자신들의 성적표를 직접 만들게 되었다. 비록 간단한 함수만 사용했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배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ICT수업을 3학기 초반까지 이어가다가 수업을 받는 아이들이 바뀌었다. 원래 수업을 받던 7학년 아이들은 졸업시험 때문에 더 이상 ICT수업을 받지 않게 되었고, 그동안 ICT수업을 받지 않았던 나머지 1~6학년 아이들로 바뀌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수학수업에서 손을 뗐다. 졸업시험을 준비한다며 매일 시험만 보고 있는 교실에서 나의 역할은 더 이상 없어 보였다. 그리고 ICT수업 대상이 많아진 만큼 수업 시간도 늘어났기 때문에 ICT수업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새로운 아이들과 다시 반복이었다. 기본 조작방법을 알려주고 연습하길 반복하면서 타자연습도 시작했다. 아직 알파벳조차 잘 알지 못하는 저학년에서부터 어느새 카드게임을 찾아서 몰래 하고 있는 고학년까지, 아이들의 ICT수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짧아서 타자연습 이상을 하지 못하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는 집에 가야 할 시간]

     

    수업을 하면서 때때로 시험을 위한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것에 회의감도 들었다. 머나먼 이 곳 보츠와나땅을 밟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 하듯이 다양하고 재미있는 수업을 하고자 마음 먹었지만, 지금까지의 나는 족집게 학원 강사같았다. 잘 가르쳐서 시험점수를 올리기 위한 방법과 요령에 충실하게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수업의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학교에서 바라는 것은 이런 수업이었다. 당장의 시험 점수를 올리고, 더 나아가서 졸업시험에서 상위 등급을 받는 학생들이 한 명이라도 늘리는게 1순위였다. 무책임해 보일 정도로 노트필기만 하게 하면서 시험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아이들의 태도를 탓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회의는 접어 두고서라도 지금의 주입식 방법이라도 잘 해보자고 마음을 다지기도 했다.

    어느새 이곳에서 보낸 시간도 10달을 넘겼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좀 더 많은 걸 해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그게 나의 한계라고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고 어렵고 힘들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다. 이런 수업이나마 아이들은 좋아해주었다. 어쩌다 수업을 못하는 날이면 아이들은 지나가면서 왜 오지 않았냐고 물어봐주었다. 오가는 길에 넌지시 수업에 대해 물어보면 좋은 말이 많았다. 그게 빈말일지라도 10달 넘는 시간동안 열심히 할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의 머리보다 가슴에 남아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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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Lee Gyus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