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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상열지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중요한 화두였다. 하지만 이 곳 보츠와나에서는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가끔 운전을 하면서 지나가다 보면 연인으로 보이는 한 쌍의 남여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만 1~2번 정도 본 것 같다. 어쩌다 본 그 모습마저도 이질감이 느껴질 만큼 나란히 걸어가는 연인을 볼 수 없다. 그나마 인터넷 때문에 주말마다 롯지에 다니면서 한 두 번 정도 더 본 것 같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이 없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주변에서도 젊은 사람들은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나라의 출산율은 높다. 2016년을 기준으로 2.73명이다. 인구 역시 매해마다 1~2%씩 꾸준히 증가한다. 출산율과 인구증가율이 높다고 해서 길거리에서 연인을 보게 되는 확률이 높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런 높은 출산율을 만들어내는 커플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궁금해졌다. 이런 생각은 보츠와나에 왔던 초기부터 들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짧은 시간동안의 경험이었지만, 어느 순간 길거리에서 연인들을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미쳤고, 그 생각과 짧은 경험의 상승작용으로 확증편향된 것일 수 도 있겠다.
사실 돌아다니다 보면 이들이 데이트를 즐길 만한 장소가 없는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생필품을 구하는 대형 마트는 많지만 카페나 식당은 많지 않다. 대형 롯지나 호텔은 현지인이 이용하기엔 비싼편이라 주로 백인이나 관광객들만 보인다.
그러던 중 다른 선생님에게 들은 얘기가 이런 쓸데없는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올해로 2년째 보츠와나에 파견중이고, 현지인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분이기에 그 설명에 신뢰가 갔다.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현지인들은 나가서 놀 것도 없으니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을 즐겨한다. 남녀 단둘이 있더라도 그냥 한 명의 집에 놀러가서 노는게 자연스럽고, 그렇게 놀다가 같이 자기도 한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그러면서 나의 경험과 다른 선생님들이 해주었던 몇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1
현지학교로 온 첫 날이었다. 나는 교장을 만나서 인사를 나눈 다음 앞으로 지내게 될 집에 대해 물어봤다. 교장은 현재 남는 관사가 없으니 당분간은 젊은 선생님과 같이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감안했던 일이기에 큰 거부감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와 한 집을 쓰게 될 선생님을 소개해 주었는데 조슈아 라는 이름의 ‘여자’선생님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남자일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건 조슈아의 반응이었다. 분위기를 보니 미리 합의 된 게 아니라 처음 듣는 이야기였던 것 같았다. 그런데도 너무나 쿨하게 승낙을 한다.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교장에게 알겠다는 말을 한 다음 나를 쳐다보면서 인사를 했다. 그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건 나뿐이었다. 교장에게, 그리고 같이 살게 될 조슈아에게 재차 물어봤다. 같은 집에서 같이 지내는 게 정말 괜찮은 건지. 물론 대면한 자리에서 불편하다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녀의 대답 속에 약간의 불편함만 느껴져도 그냥 내가 싫다고 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슈아는 아주 흔쾌히 ‘No problem’을 외쳤다. 그렇게 거의 1달 간 조슈아와 한 지붕아래 살았다.
#2
한 지붕아래에서 1달 정도 같이 살았던 조슈아와 있었던 일이다. 1달을 같이 지내면서 많이 친해졌다. 그리고 내가 집을 구해서 나와 살기 시작한 뒤로 내 집에 놀러가겠다고 몇 번을 얘기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 핑계를 대면서 피했다. 그 당시에 피했던 이유는 집에 와도 별로 할 것도 없고, 사람을 만나면 밖에서 만나는게 익숙한 나에게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다. 나중에 데려다 주는게 귀찮기도 했다.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집에는 노트북 1개와 전자책 1개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퇴근하면 하루의 대부분을 TV를 보면서 지내는 조슈아의 입장에서 우리 집은 아무런 목탁소리만 울려 퍼지는 절간이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조슈아의 말에 결국 어쩔 수 없이 집으로 초대 아닌 초대를 했다. 우리 집에 오더니 수도원같다고 했다. 그 이후엔 집에 있는 과일과 과자를 먹으면서 얘기하는 게 다였다. 그렇게 1시간정도 있다가 집에 데려다 주었다. 조슈아는 우리 집에 와봤자 재미가 없는걸 아는데도 그 이후로 1번 더 놀러왔다.
#3
내가 아닌 다른 여자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현지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변에 있는 남성 현지인들의 추근덕거림 때문에 힘들어했었다. 심지어 같은 학교에 있는 담당 교사마저 그런 식이었다. 같이 클럽같은데 놀러가자고 하고, 집까지 따라가려고 하고, 무튼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목적은 집에 놀러가는 거였다. 그렇다고 위협적인 말이나 행동을 한 건 아니지만, 다분히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는데다 해외까지 멀리 나와서 혼자 지내고 있으니 스트레스가 심했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고, 본인 또한 적응해서 많이 안정되었다. 하지만 당시에 이러한 상황을 주변 사람에게 말하면 반응은 정반대였다. 현지인 교사나 교장, 교육부 관계자에게 어려움을 토로하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한국인 교사나 관리자에게 말하면 한결같이 그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고 주변 남자들을 반쯤은 미친놈처럼 생각했다. 나역시 그랬다. 상대가 거절하면 적당히 하다가 그만해야지, 속된 말로 발정난 개정도로 생각되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에 대해서 현지인과 한국인의 온도차이가 난다는 게 흥미로웠다.
#4
이 역시 내가 아닌 다른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이분은 남자 선생님이다. 한 번은 현지 교사들과 함께 동네 클럽에 놀러갔다고 한다. 클럽이라고 해봐야 정신없는 음악이 나오는 펍 정도였다. 그 곳에서 한 여성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가 돈이 없어서 맥주를 못 사먹고 있다길래 싼 걸로 하나 사줬다고 한다. 그리고 대화를 이어가다 곧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다음날 이 여성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어제 펍에서 담배를 놓고갔던데 내가 너희 집으로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이 선생님은 그냥 담배를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상대방에게 호감이 생겨서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연락을 하는 건 십분 이해가 된다. 재미있는 부분은 굳이 집으로 가져다 주겠다고 한 것이다.
2년차 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이런 이야기가 떠오르고 나니 이들의 연애방식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왜 그렇게 밖에서 연인을 보기 힘들었는지도 조금은 납득이 된다. 현실적으로 밖에 나가봐야 오락거리가 없으니 누군가의 집에 찾아가서 노는게 일상인 것이다. 친구사이에도 연인사이에도. 누군가를 집에 초대한다는 것, 또는 누군가의 집에 간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이 일반적인 한국인의 생각보다 낮다. 아주 많이 낮다.